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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황소처럼
지난 3월 11일 존경하던 이모부가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뭐 대부분 그러하듯이 나 역시 친가보다 외가쪽을 더 좋아하는데 엄마에 대한 느낌과 다른 이유가 있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우선 친가쪽 남자들 열에 여덟은 술버릇이 좋지가 않다. 거기다 형제라도 남을 절대 이해하려들지 않으려 하고 본인의 고집과 주장만 내세우기를 좋아한다. 물론 나도 그 고집을 좀 물려 받았다. 하지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큰 사촌형들은 어른들과 똑같지만 바로 위 사촌형부터 아래 동생들까지 술에 대한 실수나 타인의 의견을 묵살하는 성질은 물려 받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외가쪽은 그 누구하나 지금까지 술에 대한 실수를 하거나, 고집만 피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다 좋은게 좋은거라 생각하고, 최대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
7살 서울로 이사간 4평짜리 단칸방 집에 살때 그 집 주인할머니께서 떡볶이 장사를 하셨다. 당시 답십리 달동네였는데 큰 공터가 있어 정말 많은 아이들이 모여 노는 장소였고 그 공터 입구에 이사간 집이 있었다. 그곳의 주인집 할머니가 집 한쪽에서 떡볶이를 만들어 파셨는데 태어나 처음 먹어본 떡볶이는 짜장면과 마찬가지로 신세계였다. 다만 짜장면보다 싼 가격에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는 것 짜장면도 7살에 처음 먹어봤는데 지금 기억으로 당시 가격이 300원인지 500원인지 그랬던 것 같은데 떡볶이는 50원이면 먹을 수 있었다. 거기다 종종 셋집 아이라는 특혜(?)로 공짜로 먹는 행운도 누리고 말이다. 그 당시 떡볶이는 쌀이 아닌 밀가루로 만든 것이었다. 당시만해도 쌀은 역시 귀했고 쌀떡볶이가 나온지는 어렴풋한 ..
어느 덧 큰 아이가 벌써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난 국민학교 입학하던 기억은 없고 그저 사진으로만 그랬구나 할 뿐이지만 그래도 졸업하던 그 날은 기억나고, 아직도 바로 어제까지 대학 친구들과 어울렸던 것 같은데 어느덧이란 말이 입버릇처럼 나오는 지금에 이 자리에 있게 되었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는 것보다 내가 학부모가 되고 또 다른 상황을 맞이한다는게 신기하고 설레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학창시절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에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국민학교는 학교보다 병원을 더 많이 가고, 허약할대로 허약한 몸으로 중학교에서는 단 1년간이었지만 아직도 잊을래야 잊을 수 없었던 괴롭힘, 그로 인해 제대로 학업을 할 수 없어 고등학교 진학도 제대로 못했었기에 ..
정말 길고 긴 19주간의 일정이었다. 매주 토요일 오후 3시에 '청주 기적의 도서관'에 아빠들이 모여 교육받는 동화구연 수업의 첫시작은 정말이지 쑥쓰러움으로 인하여 강의장 전체가 너무나 어색했었다. 오랜 경력을 가진 선생님들조차 그 어색함에 어찌할 바를 몰라하시는데 정말 난감했다. 하지만 좋은 선생님의 지도 아래 그 쑥쓰러움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수 있었다. 동화구연 교육을 받게 된 것은 지난 3~4월 '청주 중앙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평생교육프로그램 중 하나인 '아버지학교'를 자진해서 등록하고 두달 간 매주 수요일 열심히 참석하여 수료하였다. 지금도 전혀 변함이 없기는 하지만 어린시절 너무나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을 하고, 훗날 내가 아빠가 되면 그러지 말아야하지 했는데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회사에서 임원이 병으로 인하여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3일간 빈소를 지키고 장지까지 동행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화장터와 납골당을 가게 되었는데 매번 선산에서 상을 치를 때와는 사뭇 그 분위기와 기분이 달랐다. 그런데 그 곳에서 우연히 보게 된 한 재떨이가 그냥 눈에 띄었다. 별거 아닐 수도 있고,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인생의 모든 것이 멈추어 이제 추억으로만 존재하는 곳에서 한 켠에 놓여진 재떨이에 관리가 잘 안되는지 굳어버린 흙 위로 나온 클로버 잎과 그 가운데 절묘하게 놓여진 담배꽁초가 눈길을 끌었다. 굳어버린 흙은 더 이상 연장이 되지 않은 삶 같았고 놓여진 하나의 담배꽁초는 남겨진 자들의 한 숨 같았다. 그리고 세잎클로버들의 모습은 그 의미처럼 그 ..
21세기에 들어서서 세상은 너무나 급격하게 변해가고 있다. 그 중에서 교육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아니 무엇보다 오히려 IT보다도 더 급격하게 변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하게 되는데, 지금 말하는 교육은 단순히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엄마 뱃속의 태 아부터 생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이어지는 교육을 이야기한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거창하게 서두를 시작하나 하겠지만, 지난 1년여간 여기저기서 듣고, 보고 배우며 깨닫게 되었고 그게 정말 현실이라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2008년 6월 쯤 회사에서 처음으로 사내교육운영에 대한 직무를 부여 받고, 외부업체에서 '교육담당자 양성교육'을 받게 되었고, 그때 머리를 꽝 치는 충격까지는 아니었지만, 뭔가 가슴 한켠에서 술렁거리 며, 콱 막히게 되었다. ..
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무지개가 떴네요. 사진기 찾는 와중에 무지개가 좀 옅어졌는데 처음엔 어찌나 진한지 하늘에 대고 바로 물감을 칠한 듯한 풍경이었습니다. 거기다 쌍무지개라니, 이렇게 진하고 이쁜 무지개는 초등학교 이후 처음 보는 것 같아요. 금요일 퇴근길이 너무나 흐믓해질 것 같네요. 그나저나 비오고 있어 급하게 찍느라 사진이 좀 엉망이라 슬프네요
실미도 영화자체도 매우 재밌게 봤지만 오히려 영화 이 외의 이야기가 더 기억이 난다. 뉴질랜드 퀸스타운에서 지내던 시절 갑자기 마을에 한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영화 '실미도' 배우와 연출팀이 겨울장면을 찍기 위해 퀸스타운으로 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놀러온 사람을 제외하고 장기 거주하던 한국사람이라고 해봐야 30명이나 되었을까? 학생은 기껏해야 10명정도 되었는데 평소에는 꼭꼭 숨어 잘 보이지도 않던 놈들이 난리가 났다.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유명인들을 (다른 연출분들께 죄송하지만) 한번에 볼 수 있다는 소식은 작고 조용한 도시에 지루해하던 한국사람들에게는 충분히 큰 이슈였다. 본인 역시 혼자서도 영화관에 다닐 정도로 자칭 영화광이었기 때문에 강우석감독은 말할 것도 없고, 1~2년 전부터 '박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