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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 이야기

샤우트써니 2010. 6. 24. 08:54

12월 말에 태어나 아직도 5살 같은 6살의 우리 아들

어느날 어린이집에서 맞고와 너무나 슬퍼하던 아들을 보고, 들끊는 부성의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고

아들에게 등을 내주며 주먹과 발차기를 연습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다음날 아이들이 집에 다 돌아오고 뭔가 뿌듯해하는 아들이 이상해보였다는 엄마의 증언과 저녁

때 어린이집에서 걸려온 선생님의 전화 한통화 '오늘 친구 얼굴을 제대로 한방 먹였다는' 소식

아~ 이걸 기뻐해야 할지? 민망해야할지? 아니면 죄스러워해야하는지? 갈등 아닌 갈등이 온다.

그래도 그 뒤로 절대 맞고 오지 않는 아들을 보면 자랑스럽기도 하여 좋기는 했는데 이런 또 다시

걸려온 전화 한통화 '같은 반 여자친구가 장난감을 뺏길래 그 여자애 몸을 주먹으로 내질렀다는' 소식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함을 느끼고 다시 들어간 교육

'아들! 아들은 남자야. 남자는 여자를 절대 때려서는 안돼!! 그리고 친구가 괴롭히면 먼저 하지말라고

이야기하고, 그래도 괴롭히면 선생님께 이야기해' 하고 교육을 열심히 시켰다.

그런데 아들의 질문 '그래도 괴롭히면? '그래도 괴롭히면?' 계속되는 질문에 계속되는 회유성 답변

그러나 마지막엔 더이상 답변할 말도 없어 '그래도 괴롭히면 제대로 쳐 아빠가 책임질께 단! 여자는

절대 때리면 안돼!!'

다행히 그 뒤로 지 여동생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몇달간 폭행(?)을 행사하지 않는 아들을 보니 교육이

제대로 먹혔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다.

어린시절 두어번 병으로 죽을고비를 넘기는 아빠의 건강체질을 닮아 작고 여린 아들을 보면 참 많이

안쓰럽다. 거기다 12월 끝자락에 태어나 또래보다 더 작은데, 제 나이대로 살고 싶게 하고 싶어한

아빠의 욕심에 더 어렵게 살아가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그리고 어제 지난 1년여간 애벌레부터 키워온 장수풍뎅이가 모두 사망했다. 총 6마리의 애벌레로

시작해 4마리가 정상적을 성충이 되어 아들과 딸이 너무나 기뻐했다. 도시에 살아 자연을 접할 기회

가 없는 아이들에게 장수풍뎅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물과도 같았다. 물론 장수풍뎅이의 자유를 억압

하는 큰 죄를 짓고 있지만 자식을 위해서라는 부모의 잔인함에 뭍혀버린다.

그러나 어제 최종적으로 통보 된 마지막 장수풍뎅이의 죽음

아들이 그 죽음이 무엇인지 알았다. 단순히 몇밤 헤어지는 것이 아닌 영원한 이별을 뜻하는 죽음 울기

시작하는 아들 어찌나 서럽게 한참을 우는지 그저 아무말 없이 안고 토닥거려줄 수 밖에 없었다.

난 어린시절 결벽증에 걸린 것처럼 정리정돈을 잘했다. 모든게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불안했기에

그런데 한가지 동식물을 보살피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너무나 무신경하고, 외면했다.

달동네 마당이 있는 집에 살게 되면서 개를 3번 정도 기르게 된다. 그러나 어느날 연기처럼 사라져버리

는 개들, 마지막 3번째 '아지'라는 이름을 가진 자그마한 강아지를 만난게 국민학교 6학년 시절이었나

보다. 지금껏 길러본(많이 길러보지도 않았지만) 동식물 중 가장 좋아했던 녀석이다.

귀엽기는 했는데 모르는 사람에게는 철저할 정도로 사나워 할머니에게 많이 미움받기도 했는데 중학교

1, 2학년 때인가 또 사라졌다. 동네를 하루종일 뒤지고 다녀도 찾을 수 없는 내가 제일 좋아했던 강아지

나중에 알았다 모두 아버지의 건강(?)을 위해 희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 뒤로 더욱 더 애완동물에 무관

심하게 되었다. 식물 역시 제대로 물을 주지 않아 말라 죽이기 일쑤였고 그런 아빠가 함께하는 장수풍뎅

이였으니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애완동물 중에 기르기 가장 쉽다는 장수풍뎅이였는데, 그나마 3~4일에 한번 챙겨주는 먹이도 제때 주

지 못하고, 짝지기 하면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될 알이 무서워 암컷수컷 나누어 놓았으니 그 놈들 삶이

팍팍하여 말라죽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들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기르기 시작한 장수풍뎅이에게 잔인한 짓을 하고, 아들에게도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 그리고 역시나 애완동물을 기르게 되면서 갖는 잔인함과 슬픔이 싫어 외면하고 살았던게 맞는

게 아닌가 싶다. 

이번 주말에는 아들과 함께 장수풍뎅이의 시신(?)을 근처 강가에 묻어주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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