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황소처럼
술에 대한 추억 본문
어릴 때 술을 참 지독히도 싫어했다.
아버지 영향도 영향이었지만 우리 친가 쪽이 술에 대해서는 그다지 곱게 봐줄 수 없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 술을 마신 것도 20살이 되어 회사에서 형들이 강제로 권해서 먹게 된 게 처음이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고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술자리에 같이 가게 되었다.
신입생환영회에서도 거의 마시지 않았던 술인데 과에서 딱 몇명만 모여 친해지는 자리이기도 해서
그냥 두 눈 질끔 감고 권하는 술을 마시게 되었다. 권하는 술은 글라스에 따른 소주였고 2잔에 난
저승을 구경한 것 같았다. 하지만 핏줄은 못 속이는지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한 서너달 지나니 한자리에서 소주 5병은 우스웠다. 그래도 술을 마실때마다 항상 실수하지 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정말 술을 술로써 즐기기 위해 밖에서만 마셨고, 취기가 어느정도 오르면 자리에서 바로 일어났고,
집에 들어가기전 항상 옷매무새를 다시 살피고는 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내가 30대가 될 때까지도 술을 마실 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술 ]
마시는 나를 보고 무척이나 놀래시던게 생각난다.
그런데 군대를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술이라면 질색을 하는 대대장을 만난 덕에 체육대회, 사계청소
때에도 술 구경을 못한 덕에 술에 대한 적응력이 많이 상실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유지를 한다.
술에 대한 또 한번의 충격은 제대하고 이모님댁에 갔을 때 너무나 청순하고, 바른생활이던 누나가
집에서 만화책을 보며 캔맥주를 마시는게 아닌가 당시 나에게는 집에서 술을 마신다는게 엄청난
문화충격이었다. (훗날 친구가 결혼했을 때 집에서 술을 마시자 제수씨가 알콜중독자라며 매우
충격을 받았던 적도 있다.)
너무나 싫은 시바스리갈 (어짜피 로얄살루트가 시바스리갈 21년산 아닌가)
그냥 시바스리갈만 입에 넣으면 비린내와 역한 기운이 느껴져 싫다.
어쨋든 개인적으로 술은 맥주를 제일 좋고 그다음 소주인데, 이상하게 양주는 잘 받지를 않는다.
특히 시바스리갈은 아예 냄새도 싫을 정도다. 그나마 마시기 편한 양주는 발렌타인과 제이앤비 정도
이건 예전에 상사가 해외출장 다녀오면서 사다 준 대박알콜 ㅋㅋㅋ 이 후 한번도 구경 못했다 ㅠ.ㅠ
술에 대한 취향이 한번 변했던 적이 있는데 뉴질랜드에 갔을 때다
한국에서는 와인이란 마시기도 불편하고 맛도 없는 정말 볼품 없는 술이였는데 뉴질랜드에서는
돈이 없어 마시게 된 2리터짜리 종이상자에 담긴 화이트와인이었는데 너무너무 맛있고 먹기에 너무
나 부드러운 와인이었다. 거기다 체험비가 50달러에서 100달러까지 하는 와인제조장 체험을 단 돈
7달러에 하고 와인이 정말 맛있는 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한국에 다시 돌아오고나니 또 그때의 맛을 느끼기가 너무나 힘들다.
2년여 전 고모님댁에 놀러갔을 때 고모부가 딴 와인 지금껏 먹어본 와인 중에 제일 맛있었다.
그 뒤 구하려고 정말 여기저기 무지하게 수소문을 했지만 구할 수가 없었다.
술집에서 먹어본 술 중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대학로에 있는 '반저'의 사과주를 비롯한 과일주다.
머리를 울릴 듯한 충격은 아니었지만 이 역시 새로운 술 문화에 대한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과일 속을 파내서 술을 만들고, 그 과일껍질을 술잔이나 술병으로 이용하는 것이 신선했고, 또한
맛도 좋았다. 그리고 그 당시 처음 먹어본 오삼불고기도 아주 잘 어울렸고
반저는 인기도 좋아서 항상 줄을 서서 들어갔다. 밥집과 틀려 금방금방 손님이 나오지도 않고, 줄이
좀 길다 싶으면 바로 포기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언제가부터 반저가 유명세를 타더니 가격표가
상승하더니 직원들의 친절도 하락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결혼하고 한번도 가보질 않아서 벌써 6년은 흘렀는데 다시 초심으로 좀 돌아갔으려나?
반저의 최고 명물 사과주, 다 마시고 저 사과 먹었다간 바로 갈지도 모른다 ㅋㅋ
우리나라 술 중 판매되는 제품 중에 제일 좋았던 것은 '오매락 퍽'이다.
'배상면주가' 제품으로 1년에 딱 두번 명절 때 홈플러스에서만 판매하는데 가격이 좀 세다
이 술을 접하게 된 계기는 계룡시에 있는 육군본부에서 군문화축제 시 PX에서 면세로 판매되는
것을 보고 어떤 아저씨가 같이 온 사람들에게 이 술 대단하다면 1박스를 덥썩 집어가길래 나도 덩달아
1병을 사보게 되었는데 이젠 군축제만 가면 당연하듯 사오는 술이다.
(4만5천원짜리 술을 1만5천원에 ㅋㅋ)
세계 주류 디자인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 '오매락 퍽'은 이름답게 일단 망치로 토기를 깨야한다.
토기를 깨면 안에 도자기에 술이 담겨 있는데 양은 약 500ml 정도밖에 안된다. 그런데 와~ 술 맛이
정말 입과 혀에 쫙쫙 달라 붙는다.
작년엔 군문화축제가 신종플루로 취소되어 구하지 못한게 아쉽다. 올 해는 꼭 서너병을 챙겨야지
하고 다짐한다. ^^;;
술맛을 유지하기 위해 토기로 씌워 구웠다는데 그로 인해 가격이 좀 더 상승한게 아닌가 싶다.
깰때는 안에 들은 소품을 잘 이용해서 가루가 여기저기 안튀게 해야 한다.
내 인생 최고의 술은 아직까지는 아래의 인삼주가 아닌가 싶다.
맛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가 담긴 술인데, 10살 때 어머니가 동생과 내가 결혼하면 뜯는다고
정성스럽게 담그신 인삼주인데 정작 어머니는 뜯는 것도 못 보고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래서 어머니의 유품으로 애지중지 했었는데, 담근지 20년 정도 되었을 때 결혼을 하고 너무나
술 맛이 궁금해 한 병을 뜯게 되었다.
하하 그런데 이거 술 맛은 객관적인 평가로는 텁텁하고, 흙냄새가 풍기는게 낙제점이었다.
그러나 세상 모두가 객관적이고, 논리적일 수 없듯이 이 술은 내게 두 말이 필요 없는 최고의 술이다.
어머니가 담가주신 인삼주
술은 심신을 건강하게 해 준다고 하지만, 대부분 심신을 망친다. 그런데 그 망치는 것은 사람의 정신
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술이 무슨 잘못이겠는가! 다 사람의 정신이, 생각이 문제지 그 것을 알고
나서부터 취기가 올랐는데도 술자리가 파할 분위기 아니면 테이블에 엎드려 묵언의 시위를 한다.
그러나 요 반년 스트레스로 인하여 술을 찾는 날이 좀 많았다.
많이 마신 것은 아니지만 너무 자주 마셨던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얼마 전 부터 술을 자제하고 있다. 차라리 다시 한번 강원도 산골에 쳐 박히면 아예 잊으려나
다음엔 맥주에 대한 추억을 한번 이야기 해 볼까!